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독서

도서관을 빼먹고 책을 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 무엇이 있을까?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살 수 있는가? 안된다면 왜 인가? 이런 문제들이다

샌델은 시장경제를 이룬 사회에서 시장사회를 이룬 사회로 변모 하고 있다고 들고
예전에는 돈으로 살 수 없었던 것들을 시장에서 파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된다고 하고 있다.
돈으로 사고 파는 것이 횡횡해짐으로써 피해를 받는 가치들이 존재한다 그것이 어떤것인지 알아보자

1. 새치기
우리는 새치기를 돈으로 살 수 있을까?
미국의 경우 의회방청권을 대리줄서기로 사고 팔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돈이 많다면 이회의 맨 첫자리를 차지 할수 있다.
시장주의자 혹은 자유주의자, 공리주의자, 경제학자들은 지나치게 수요가 많은 것은 시장의 불합리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대리줄서기나 암표를 당연히 시장의 논리로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당연한 권리라고 인식하고 있다.

반박1.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돈이 많은 기득권들에게만 유리한 카르텔을 형성 할 수 있지 않나?
반박2. 만약 돈을 많이 내는 것이 가장 그것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유일한 척도다 라는 명제를 진실로 받아들인다면
한번 봐볼까? 하는 졸부와 그것을 보고 싶어 미치겠다는 사람중에 기회는 졸부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그 졸부의 효용은 보고 싶어 죽겠는 사람의 효용보다 미치지 아니한다. 이는 어찌 설명할 것인가?

미국 유명한 자연관람지를 보려면 6개월간의 예약기간이 필요하다. 그러자 암표상이 들끌었는데
관계자는 암표상을 비난하며 이렇게 말한다
"자연은 모두의 것이고 무료로 공개 되는 것이 당연하다 소유권은 모두에게 있는 것이지 돈을 내는 사람에게 공개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합의된 가치로써 공정함이란 자신이 불이익을 받을지 몰라도 나보다 더 급한 사람이 먼저 서비스를 이용해도 된다는 믿음이다
대학의 신입생 선발의 본질은 돈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재능이 많고 장래가 유망한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이며
병원의 응급실은 도착한 순서가 아니라 더 응급한 환자를 치료한다는데 중점을 둔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공점함이라고 부른다.

2. 인센티브
마약중독자에게 불임시술을 할경우 돈을 준다면 옳은가 그른가?
인권 단체 : 나치의 우생학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자연권이다. 돈으로 가치를 매겨서는 안된다
정부 : 자발적인 선택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돈이 필요한 중독자들을 위해서 모두에게 좋지 않나
인권 : 그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지는 않지만 유인책 자체가 매력적이라 강요 받는 것이 아닌가? 또한 이는 뇌물이다. 뇌물도 두 사람이 자발적으로 하지만 하면 안되는 이유는 부패 행위이기 떄문이다.

아이를 파는 부모- 아이를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돈으로 본다
로비를 받는 판사 -그의 권위를 사법적 양심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수단으로 보기에 비난 받는다
불임시술 중독자 - 생명의 잉태라는 책임감을 금전적 이익을 취하기 위한 대상으로 보기에 타락한다.
사람이 애만드는 기계로 보이는가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초기에는 설명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들은 이 학문을 드 높이기 위해서 비경제적 재화에 까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들이대고 있다.
모든 사람의 활동은 경제학의 지표로서 표현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강요하고 혹은 무의식중에 스며들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금연에 성공한 사람에게 주는 인센티브는 비난 할 수 있는가?
다시말해 잘못된 이유로 올바른 일을 하게 이끄는 것은 괜찮은가?
하지만 이는 심리학적인 처사를 무시한 것이다. 내재적 동기가 아닌 외재적 동기로서 행동이 이루어진다면
그 보상이 사라졌을때는 그 행동이 예전상태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는 심리학적 인문학적으로 무지한 처사라 생각된다

시장의 논리는 사회에 아무런 스크래치를 내지 않는 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아니다 

이스라엘의 유치원의 예를 들어보자
부모가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늦게 와서 교사가 퇴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벌금체를 도입했다
그러자 오히려 늦게 오는 사람이 많았다.
벌금 내고 늦게 가지뭐.. 이런식으로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올떄 벌금 늦게와서 미안하다는 죄책감 비용을 지불하고 누릴 수 있는 서비스아이 데리러 
중국의 1자녀 정책 : 부모애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상품
환경오염 배출권제 : 오염시켜서 미안하다는 죄책감 돈 주면 해도 되는 것
공무원 인센티브제  : 당연히 해야 하는 도덕적 신념 돈벌기 위해 해야 하는 것

도덕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채 사회적 효용을 맹목적으로 추구 하면 그 사회는 타락한다
죄책감을 돈으로 사서는 안된다

3. 선물
경제학자들은 선물을 비효율적인 관념으로 보고 있다.
다들 받은 선물이 자신의 효용을 채우지 못하는 것으로서 작용한 경험이 있다.
그렇다면 현금으로 주는 것이 가장 좋지 않겠는가? 그러다면 왜 사람들은 현금으로 주는 것이 좋지 않다 표현하는가

선물을 받는 여자쪽에서 가지고 있는 개념은
1. 이 남자가 나의 선호를 정확하게 알고 있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
2. 선물이 나에게 줄 효용

여기서 2번은 채워졌지만 1번이 채우지지 않은것이다. 
만일 현금을 주는 것이 사랑을 표현하는 유일한 척도라면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우정을 돈으로 살수 있는가?
우정을 이루고 있는것 : 공감 관용 배려 관심 미덕
→다시말해 공감 관용 배려 관심 미덕을 돈으로 살수 있는가? 라는 말이다

명예교수직을 돈으로 살 수 있는가?
교육 개념이 이루고 있는것 : 진리추구, 학문의 발전, 인도적교육, 시민의 교육
진리추구, 학문의 발전, 인도적교육, 시민의 교육을 돈으로 살 수 있는가?
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헬조선 된다

변호사들에게 무료로 퇴직자들에게 법률 서비스를 요청했을 경우와
인센티브를 주면서 해달라고 했을 경우에
인센티브 보다 무료로 해달라고 했을때가 훨씬 많았다. 

어떤 일에 대해 인센티브를 준다면
무료로 봉사해 달라고 설득했을때 보다 금전적으로 너무 적다고 투털댈 수 있다.
개인의 공공성이 돈으로 인해 타락하고 경제학적 관점에 의해 밀려 난다는 것이다.
또한 명예심이나 공공선은 한번 타락하면 다시 회복되기 힘들어 어느 경제학자들은 이들또한 고갈되는 자원으로 보기 시작했다.

다른 견해에서는 공공선은 쓰면 쓸수록 늘어 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시민의 참여가 소비될 수록 더욱 늘어나는 것 처럼

돈으로 모든 것을 사고 팔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우리가 말하는 연대의식 혹은 형제의식등은 밀려나며 불평등으로 인해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을 분리하고 최종적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할 것이다.

사회적 헤메모니를 장악하고 이는 자들은 돈이 있는 자들로서
전통적 윤리관을 밀어내고 그들의 정당성을 대중에게 퍼뜨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진리가 되고 사람들의 표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장사치는 정치인이 되면 안된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독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
  1. 스스로 커피를 타먹거나 사지 않고 아랫사람에게 매번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권위주의적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이 과연 사회적 약자 노동자, 민중, 국민의 권익을 위해서 제대로 일할 수 있을 것인가?
  2. 안도현시인의 연탄재를 해석 한 글 : 연탄재가 한 때는 타오르는 불덩어리 였으며 제 몸을 불살라 내 뿜은 열기로 배고픈 가족을 위해 밥을 지었고 하루일에 지친 아버지를 달랬고, 애틋한 사랑을 나누었고 늙은 부모를 모셨으며 소중한 아들딸을 키웠다. 사랑도 열정도 벗이 살아가는 인생이 널린 세상에서 어느 누가 겨울 골목길의 연탄재를 걷어찰 자격이 있는가? - 산문으로 쓰면 이리 글이 길어지나 시로 쓰면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였느냐?  로 직관적으로표현
  3. 문자로 쓰지 않은 것은 아직 자기의 사상이 아니다. 글로 쓰지 않은면 아직 논리가 아니다. 글로 표현해야 비로소 자기의 사상과 논리가 된다.
  4. 글쓴기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로써 표현할 내면이 거칠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서 인정받고 신ㅍ다면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나아가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 글은 다시말해 온몸으로 쓰는 것이며 삶 전체로 쓰는것이다.
글쓰기라는 행위에 대해 나는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고 해야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아는 글쓰기의 모든 것은 입시나 고시를 위한 것으로써 그저 한낱 시험용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그저 유시민작아에 대한 개인적인 애착- 그 사람의 글이 나의 영혼을 울렸기 떄문이며, 그 사람의 상대의 논점을 반박하는 날카로운 모습에 반하였고,그 사람의 행동, 언변, 행보 또한 내가 되고자 하는 이상적 인물에 가깝다- 때문이다. 

1장 논증의 미학
논리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찌 해야 하는가? 
첫째, 취향 고백과 주장을 구별한다. 그저 개인적 취향일 경우 논증을 할 필요가 없다. (소위 선비짓)
둘째, 주장이라면 반드시 논증하라. 바꿔 말하면 반박하려면 반드시 논증이 적합한지 따져보라. 
예를 들어, 공무원 연금 개혁이 개악이다 라는 주장을 하고 싶다면 주장 되풀이가 아니라 어째서 이것이 개악인지에 대한 근거를 들어야 한다. 사실과 주장을 구별하고 논증 없는 주장을 배척하며 논리적 오류를 정확하게 지적해야 한다.
셋째, 글에 끝까지 집중하라. 글이 길어 질수록 생각들이 가지치기를 해 집중하지 않고 쓰다보면 엉뚱한 곳에 도착하기 마련

2장 글쓰기의 철칙
그는 시와 논리적 글쓰기를 나누어서 보고 있다.
시는 사람의 직관에 호소 하며 적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힘을 가진다. 다만 재능이 필요하다.
하지만 산문은 연습만 하면 누구나 잘 쓸수 있다.
첫 걸음은 텍스트를 발췌 요약하는 것이다. 발췌는 텍스트의 중요한 메시지만 꺼내는 것이고 요약은 자신의 인지 체게에 맞게 화학적 혼합을 거쳐 압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글의 중요한 포인트를 알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이 요약한 것을 보고 미쳐 내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나 잘못 이해했던 부분들을 알 수 있기 떄문이다. 
그래서 책 한권을 600자로 요약 하는 연습을 해본다.
첫문장을 쓸때는 자신의 주장을 이끌어 내는 꼭지가 있어야 하며 퇴고나 멀티플레이가 필수이다.

3장 책읽기와 글쓰기
다독의 이점은 독해력 향상에 있다. 독해력은 주어진 텍스르틀 신속하게 정확히 이해하는 힘이다. 
나아가 작가는 글자의 해독 뿐만이 아니라 책이 가지는 인식의 변화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다.
이것에 대해 영어 조기 교육을 하려거든 확실히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모국어를 포기하고 영어를 할 수 있는 상황이면 상관이 없지만 어정쩡하게 되어서는 사유자체가 깊게 형성되지 못하는 위험성을 지적한다. 이는 언어를 대화나 해석의 도구로써 뿐만이 아니라 생각을 담는 그릇으로써 인식하기 떄문이다.

4장 전략적 독서
좋은 글과 좋은 책은 무엇이며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가?
아이들에게는 억지로 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 동기가 충만하게끔 쉬운 책-되도록이면 한글로 잘 쓰여진책-이 좋다 (000이  읽어야 하는 추천도서는 무시하라) 그러다 보면 그것이 버릇을 형성하고 성인이 되어서 까지 글 읽기의 추진력이 될 것이다. 머리가 커서는 인간, 사회, 문화, 역사, 생명, 자연. 우주를 이애하는에 필요한 기념과 지식을 담은 책을 읽는 것이 좋다.
이런 책들은 한번이 아니라 다독을 하거나 베껴쓰기도 글을 늘리는 좋은 방법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글쓰기 책은 글쓰기의 중간 단계에 접어든 사람이 읽는 것이 좋다는 것인데, 이유인 즉슨 글 쓰기 자체에 대한 흥미와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어려운 기술을 배운들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5장 못난 글을 피하는법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반면교사로 삼고 성장할 수 있는 면에서 좋은 글과 나쁜 글의 차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나쁜글은 말 같잖은 번역투 등이며 좋은 글은 독자를 염두에 두고 쉬운 어휘로서 충분히 뜻을 전하는 글이 좋은 글이다.
결코 화려한 수식어나 어려운 단어를 썼다고 해서 좋은 글이 아니다.
나쁜 글쓰기를 피하기 위해서 우리말 살려쓰기도 좋다. 예를 들자면 '사고다발구간'을 '사고 잦은 곳'으로 바꾸어 쓰면 뜻이 훨씬 명쾌해짐을 알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해당 시대를 사는 민중과 유린된 고유어를 많이 쓴다고 해서 좋은 글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글을 처음 쓴다면 문장형태는 단문으로 쓰는 것이 좋다. 단문으로 쓰면 뜻의 명쾌함, 빠른 논리 전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어의 면에서는 되도록 '거시기'화법을 피하고 적재 적소에 알맞은 단어를 넣은 것이 좋다-이는 상당한 독서량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하다-.

6장 아날로그 방식으로 쓰기
하루 30분 별다른거 할것이 없는 시간들이 있다. 이런 시간들은 모와도 충분히 글 연습을 할 수있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들의 포인트를 메모해서 집에서 글을 완성하는 방법도 있고 주위의 풍경을 묘사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종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많이 써서 글쓰기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이렇게 몇개월 하다보면 자신이 쓴 글을 되돌아 보았을때 유치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는 자신의 글쓰기 실력이 성장했다는 방증이다.

퇴고를 할 시 문장과 상관 없는 요소나, 과도한 형용사들은 삭제 하는 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명확하게 나타낸다.

또한 소위,배웠다는 사람들이 하는 실수는 자신의 지적 허영을 뽐내기 위해 어려운 단어들이나 업계용어를 써서 독자를 고문하는 일이 있는데 아주 잘 못된 것이다. 책이나 글을 내린 다는 것은 자신의 주장을 타인에게 관철시키기 위함인데 알아 듣지 못하는 고약한 정의들을 내리고 지적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책은 독자와의 소통에서 실패한 것과 다름 없다 .

7장 글쓰기는 축복이다
글쓰기는 기예이다 기예보다 중요한 것은 글쓴이의 내면이다 라고 주장하는 장이다.
지성적으로 천박한 인간도 괜찮은 문장을 쓸 수 있다. 허나 그걸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다른 문제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 나 아닌 타인에 대한 배려가 묻어 나오는 그렇지 않은 글과 아주 다르다.
삶=글쓰기가 성립한다 가정하였 때 대필을 부탁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거짓으로 꾸미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애절양 좋아하는 시

蘆田少婦哭聲長(노전소부곡성장) 갈밭마을 젊은 아낙 길게길게 우는 소리.  
哭向縣門號穹蒼(곡향현문호궁창) 관문 앞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 보고 울부짖네.
夫征不復尙可有(부정불복상가유) 출정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하는 일 있다해도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사내가 제 양물 잘랐단 소리 들어본 적 없네
舅喪已縞兒未?(구상이호아미조) 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났고,갓난아인 배냇물 도안말랐는데


三代名簽在軍保(삼대명첨재군보) 이 집 삼대 이름 군적에 모두 실렸네. 
薄言往?虎守?(박언왕소호수혼) 억울한 하소연 하려해도 관가 문지기는호랑이같고,
里正咆哮牛去早(이정포효우거조) 이정은 으르렁대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갔다네. 
磨刀入房血滿席(마도입방혈만석)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가더니 피가 방에 흥건하네 
自恨生兒遭窘厄(자한생아조군액) 스스로 부르짖길, "아이 낳은 죄로구나!".  


蠶室淫刑豈有辜 (잠실음형기유고) 누에치던 방에서 불알까는 형벌도 억울한데 
민건去勢良亦慽 (민건거세양역척) 민나라 자식의 거세도 진실로 또한 슬픈 것이거늘 
生生之理天所予 (생생지리천소여) 자식을 낳고 사는 이치는 하늘이 준 것이요 
乾道成男坤道女 (건도성남곤도여) 하늘의 도는 남자 되고 땅의 도는 여자 되는 것이라 
선馬분豕猶云悲 (선마분시유운비) 거세한 말과 거세한 돼지도 오히려 슬프다 할만한데


況乃生民思繼序 (황내생민사계서) 하물며 백성이 후손 이을 것을 생각함에 있어서랴! 
豪家終世奏管弦(호가종세주관현) 부자집들 일년 내내 풍악 울리고 흥청망청   
粒米寸帛無所損(립미촌백무소손) 이네들 한톨 쌀 한치 베 내다바치는 일 없네. 
均吾赤子何厚薄(균오적자하후박) 다 같은 백성인데 이다지 불공평하다니,  
客窓重誦?鳩篇(객창중송시구편) 객창에 우두커니 앉아 시구편을 거듭 읇노라

시간이 이리도 지났건만 달라진 것은 없구나.. 그때나 지금이나












굿바이 카뮈

저자 : 이윤

출판사 : 필로소픽




  • 삶이 죽음보다 의미 있다는 증거가 있는가?
  • 가치 있는 삶이란 무언가?
  •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이 같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 역사적으로 왜 남을 위해 힘겹게 일한사람은 단명하고 착취하는 자는 오래 사는가?
  • 세월호 학생들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죽은건가?
  • 인간으로서 하늘의 뜻 혹은 진리를 헤아릴 수 있는것인가?

6개월 정도 백수짓을 하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역사공부를 하면 할 수록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지만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왜 하늘은 죽이는가? 인간의 탐욕이란 어디까지 끝을 봐야만 만족을 하는 것인까?

깊이 고민을 해보다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을 읽고 더욱이 암흑의 오라를 띄게 되었다. 니체까지 읽어야하지만 더 절망속에 살다가 니체를 읽고 싶었다... 어둠의 구렁텅이에 떨어진만큼 또한 니체는 나에게 생명줄 처럼 다가 올테니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도서관에서 카뮈를 잡았다... <이방인> <반항하는 인간> <시지프신화>등을 읽고 인생은 무엇을 하든지 예상밖에 있으며 죽음조차도 어찌 해볼 수 없으며 사람의 모든것은 하늘의 변덕에 달려있다 라고 읽혔다. 그러고보니 그런것도 같은데.. 메르소는 모친상을 당해도 별일 아니라고 하고 약혼자가 사랑하냐고 물어도 모르겠다고 하고 아랍인을 죽여도 별일 아니라고 하고 최후에는 교수형을 당하는데도 저항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난 운명론자가 된거 같이 저런 질문들을 배설해냈다.

나에겐 허나 시간이 없었다. 나이는 차오르고 얼른 이 허무감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뭔가... 뭔가 죽는것보다 사는 것이 더 의미 있다는 파편 하나라도 잡고 싶었고 썩은 나무라도 좋으니 잡고 싶었다. 그리고 이책을 찾았다.

작가는 시지프 신화를 이용하며 우리의 삶도 이와 같지 않냐는 논조로 이야기를 시작 한다. 굴려도 굴려도 계속 떨어지는 허무.. 의미 없음 사는것도 이와같다. 예를들면 동굴의벌레들, 매미들, 철새들은 어떤 위대한 구국의 결단아래서 저런 행동을 하는걸까? 동굴의 벌레들은 평생 먹고 싸고 번식하고 햇빛은 한번도 못 받으면서 저러고도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을 작가는 두가지 생각의 틀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객관적, 주관적으로 이야기 한다. 

1. 객관적인 만족 
만일 시지프스가 올리는 바위가 그냥 바위가 아니라 신전을 짓기 위한 바위였다면? 의미 있었을까? 아니다, 예전 고고학적 유물을 보면 알듯이 모든것이 흙속에 사장이되거나 파괴된다 그것이 로마이든 작은 부족이든, 신전을 만든다하더라도 풍화되어 없어질 것이다. 이를테면 집주인인 남자가 부인을 얻고 자식을 얻고 그 자식 또한 분가하고 자신의 죽고 난 이후 500년 정도가 지나 유령인채 이 집을 되돌아 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그렇다 하더라도 허무라는 결론이 나온다.
But, 이데아 처럼 풍화되지 않는 건물이라면? 한번 완성 시켜놓고는 허무함이 사라질까? 그것은 아닐것이다라고 말을 한다. 사람의 노동이라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함도 있지만 노동을 하는 그 자체에서도  즐거움이 나온다. 이데아속에 신전을 만든 시지프스는 무한한 권태, 활동의 영원한 부재에 시달린다. 
따라서 바위(빨리 사라짐) 신전(늦게 사라짐) 이데아속 신전(영원) 이라하더라도 시지프스에게는 구원은 없다. 

2. 주관적인 만족
만일 시지프스가 바위를 올리는 것이 본능이고 그것 자체에 만족을 얻는다면? 그렇게 된다면 객관적인 증거는 무력화 되겠지만 권태라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테일러는 이것에서 의미를 찾아 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주관적 만족에는 두가지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1)주관적 만족의 객관적 가치
객관적 가치가 결여된 주관적인 만족은 자기 혼자 섬에 살지 않는 이상 불가능 하다. 속세를 끊고 피방에 사는 인간들 또한 주관적 만족을 추구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훌륭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2)주관적 만족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자본주의적 시지프스는 기업에 만든 광고에 세뇌되어 필요없는 물품들을 사재기 한다. 남자의 로망이라 하여 비싼차를 사거나 여자의 필수품이라 하여 비싼 명품백을 들고 다니는것. 그것들을 사기 위해 돈을 번다, 그것을 사기 위해 산다(언덕으로 바위를 굴리고, 물건을 사고 나면 바위는 언덕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그러한 욕망을 위히 사는 사람의 인생은 가치 있고 참된것인가? 사마귀와 연가시의 관계처럼 자본가를 위해 노동하고, 소비하고 자신이 모르모트인줄도 모르고 나는 자유의지를 가졌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생각없는 추종, 타인들이 유여한 욕구의 충족하는 인생은 의미있는 인생은 아니다. 
"주체성이 결여 됨으로서 존엄성이 훼손된 삶이며, 통째로 가짜인 삶이다."

그리도 시지프스의 삶은 구원받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인생이 의미 있다고 '느낄'까? 
만일 고대 문명의 건축자들이 지금 나타나서 그때 지었던 것들을 볼 때 허망함을 느낄테지만 건축가들이 건설하던 그 당시에도 허망함을 느끼며 지었을까? 천만년 가는 요새라 생각지는 않고 그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하였을 뿐이다 그것에는 의지가 스며들어가 있고 흥미가 있었던 일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렇다면 의미가 있고 없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라고 말하고 이런 예시를 든다.

어느 지점에 개미가 있다. 개미들은 열심히 집을 짓고 여왕개미에게 충성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뜨거운 물이 들어와 개미들이 다 죽었다. 그것은 아이의 장난에서 비롯되었다. 개미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는 개미들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개미의 자식 부모 가족 친지들이 아이의 장난에 의해서 학살을 당한것이다. 아이에 입장에서 보면 개미란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크게 보면 그 아이가 제주 4.3 사건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할 처지라면..? 그 아이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았을때 무슨 잘못이 있어서 죽었겠는가..  다시 크게 보면 4.3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은 국방부 장관 앞에서 그냥 장기말일 뿐이다. 
국방부 장관은 한국 대통령에게 팔다리일 뿐이고 미국대통령에게 한국대통령은 그저 버리는 카드일 뿐이다. 
더 가서 우리 은하를 통치하는 외계인들이 있다면 지구는 용산 판자촌 처럼 정부에서 그냥 밀어버릴 수 있는 '하찮은'존재일 뿐이다. 

결론은 무의미는 그 개체보다 큰 범주의 시선으로 보았을때, 유한이 아닌 무한의 관점에서 보았을때, 필멸자의 시선임 아닌 불멸자의 시선에서 보았을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허나 소멸한다고 하여 무의미 한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하며 논점을 이어간다. 만일 80까지 살았던 사람이 죽어서 느끼기에 80까지 살았는데 허무하다, 무의미 하다. 라고 느낀다면 그사람이 800을 살든 8000을 살든 무의미하게 지낼 것이다. 불멸이 의미 있기 위해서는 필멸 또한 조금이나마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필멸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까..? 풍화되서? 시간에 지남에 따라 없어져서? 영화를 예를 들자면 잘 만들어진 영화가 2시간의 플레이 타임을 마치고 끝이났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허무함" 을 느낄까 "아쉬움"을 느낄까? 우리는 허무함과 아쉬움을 혼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진행하면 아쉽고 짧다면 우리는 생을 하루하루 더욱 필사적으로 살아야 한다.

삶이 유한하다고 해서 그것이 무의미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이다.

또한 유한하지만 무한인 것들도 있다. 지나간 역사, 친구, 가족, 사랑 또한 살아생전 의미 있는 존재였고 마침내 나라는 객체 또한 소멸하고 후손들 또한 나를 잊게 될때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갈테지만 지금의 사랑, 추억을 무의미 하게 만들지 못하며 그떄 사랑 했었다는 사실은 불멸이다.

유한해서 모든것이 의미 없다라는 주장 자체도 반박이 가능하다. 예를 들자면 

"내가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라고 할시 대전제 또한 논리적으로 반대가 되는 첫처럼 "모든 것이 의미없다"라고 했을때 왜 의미없음에서 파생되는 허무하다는 관점 혹은 허무주의는 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가?

세상을 볼때 신의 관점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필멸자로서 태어난 이상(그러고 보니 세상에 던져지면서 유한한 생명을 가진채로 던져졌구나...) 내부적관점과 외부적 관점을 50/50으로 맞춰야 한다고 한다.

To be continune..



'교실 밖 아이들 책으로 만나다'를 읽고 독서


[교실 밖 아이들 책으로 만나다]













 고정원 지음
 조혜원 그림 
 리더스가이드 출판



참여연대 노동야학팀 인턴을 하는도중 기본서를 찾기로 하고 난 서울 도서관을 방문했다.

역시 서울이라 스케일이 다르다고 말하던중 내가 읽을 책 '10대를 위한 노동이야기' 와 그 옆에 꼽혀 있는 
'교실 밖 아이들 책으로 만나다' 이 책도 무의식적으로 골랐다. 

항상 대안 대안하면서 찾아다녔고 변형되지 않은 순수한 교육이라는 단어 노동이라는 단어를 찾아 다녔는데
이 책에서 실마리를 얻은 것 같다.

이 책은 지역사회교육전문가? 라는 직업을 가진 분이 학교의 상담실에서 벌어지는 여러 이야기를 붙여 놓은 책이다

그리고 상담을 책으로 하겠다고 한다... 첨엔 책으로도 가능한가? 했는데 나의 조악한 독서력에 의한 착각임인 것이 밝혀졌다.

상담실을 찾아오는 이유도 사람마다 각자 다르고 책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다고 믿고 있는데 항상 아이들의 상처를 책을
통해서 보듬어 주는 기술이 역시 프로는.. 다르다 생각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술, 담배, 비행 같은 것은 어떤 것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보고 있다.

정상적으로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아이에게는 절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그리 생각 하는 것이... tv에 나오는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라는 프로에 초반부에는 아이의 땡깡으로 짜증이 나다가

결국에는 부모의 잘못으로 인한 아이의 반항이나 폭력이였다.

알코올 중독 아버지, 바람난 엄마, 무관심한 교사, 양아치라고 보는 사회적 시선..... 가정, 학교, 사회에서 버림 받은 아이들에게
갈 곳은 어디 있겠나...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고, 위협을 느끼는 어른들의 탐욕, 무절제로 인해서 아이들은 병들어가고 있다.

나중에 책 리뷰를 하나 더 쓸테지만 책 [루시퍼효과]에 보면 인간의 양면성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하나의 썩은 사과가 나머지 사과를 썩게 하는게 아니라 썩은 사과박스가 모든 사과를 썩게 한다고 한다. (그만큼 인간을 둘러싼 환경의 힘은 아주크다)

또한 이 책소개에도 나왔었는데 반가운 책 [애들아 너희가 나쁜게 아니야]에서도 항상 폭력이나 절도를 일으키는 아이들중에 올바르게 사랑 받은 아이는 없었다...

개인적인 평이지만 의사가 사람의 물질적인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교사의 역할은 인생을 살리는 역할이 아닐까 생각하고, 그 책임 또한 엄청나게 막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만큼 가치 있는 일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나 역시 이러한 교사가 되고 싶다... 가르친다는 것이 교과과정에 있는 영어, 수학, 국어, 사회만 가르치는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학교와 학원의 차이는 전혀 없다. 공교육은 학원을 따라가는 오전학원이 되고 있고 학교가 전혀 즐겁지가 않다... 내가 학생때도 이게 잘못 된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했었지만 다들 그렇게 뛰니까 뛴것이 아닌가. 진하게 살아보지도 않은 인간이 교사한다고 붙어서 나불 거리는 것 보면 구역질이 난다 뭘 가르치려고?

아무튼,, 교육은 건강하게 스스로 서는 한 사람의 성인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짐작을 해본다.
뭐 이를테면 자기이해, 그것을 통한 진로교육, 노동교육 같은..

더 많은 것을 경험해 보고 싶다. 내키지 않지만 더 아파보아야 한다...남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나아가 치유할 수 있을때까지...
내 자식이 소중한 만큼 남의 자식도 소중한 것이고, 다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니 서로 배려해야 할 것이다.

오늘도 진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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