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레바퀴 아래서
지은이 : 헤르만헤세
읽은 기간 : 2013년 6월 12일~26일
오래전 기억도 가물가물 할때 난 이책을 읽었었다. 읽은 기억만 있지 데미안과 어떠한 차이가 있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그저 [데미안]에는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고 수레바퀴 아래서 이 책 또한 [데미안]에 필적하는 인물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교육학을 배운 사람으로서 [에밀]과 [수레바퀴아래서]는 필수로 읽어야 할 책일 것이다.
배경지식 : 이 책을 읽어야할 포인트는 헤르만 헤세의 인생과 똑같다는 점이다. 그도 또한 출생에서 신학교를 지원하고 그곳에 들어가서 공부하였으나 암울,적막,꽉 막힌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신경쇠약으로 고생을 하고 학교에서 쫒겨난다. 고양에 돌아혼 헤세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시계 공장의 견습공, 서점의 견습원으로 일하면서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여보지만 우울증에 걸려 여러해동안 고통의 나날을 보낸 끝에 자산을 기도하기도 한다. 헤세와 마찬가지로 뛰아난 재능을 지닌 어런소년 한스는 결국 죽지만 헤세가 작가로서 자신의 고뇌 시련을 글로서 승화시킬 수 있었던 반면 한스는 그런 출구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이 두사람의 인생을 갈라 놓았다.
한스 기벤라트 라는 소년은 어릴적부터 머리가 좋아 영재로서 추앙받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기대를 부응 받는다. 그의 아버지 그리고 목사 또한 그 재능을 알아보고 주 시험을 통과해 신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이 아들을 위한 길이라 믿는다. 공부를 하지 않았던 즐거웠던 유년시절(낚시, 수영, 들판에서 자기)을 생각하면 아쉽지만 아버지를 실망시킬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잠시 접어둔다. 그리고 결국엔 신학교에 차석으로 입학해 주위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 그곳에서 하일너 라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주위 권위적인 환경에 저항하는 학생을 만나게 된다. 그와 같이 하는 생활에서 한스는 여지껏 자신이 몰랐던 세계와 의미 없는 학문에 대한 허탈감, 삶에 대한 궁금증, 허무주의, 냉소주의를 하일너로 부터 받는다. 결국 하일너는 숨막히는 기숙사 생활에 반항을 함으로서 퇴학을 맞았고 혼자 남은 한스는 신경쇠약과 우울에 걸려 생활, 성적 모두가 곤두박질 치고 만다. 교장은 이를 두고 의사와 상담을 하고 하일너를 집에서 요양시키기로 결정한다(실은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돌아온 한스는 어릴적 뛰놀던 그 장소에서 '나는 다시 예전 즐거웠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라는 생각과 삶에 대한 회의로 매일 눈물을 삼키면서 지낸다. 그러던 중 엠마 라는

요렇게 생겼을법한 (한스가 바라보는 엠마에 감정이입하다보니;;)
소녀를 만나면서 사춘기 소년의 두근거림과 슬픔 새로운 감정에 피폐했던 삶은 다시금 생기를 되찾는가 싶었다. 그녀를 보기 위해 사과공장에 갔을때 그녀가 자신에게 퍼 붓던 키스와 달콤한 말들은 꿈만같았다. 키스를 나누고 그 다음날 한스는 엠마가 자신의 집으로 영영 떠나버렸단 말을 듣고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것이 아니라 하나의 노리개였다는 사실을 알고 한스에게 크나큰 상처를 준다. 미움과 순수한 마음의 떨림, 사랑을 배신당했다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기계공 일을 시작한다. 노동경험이 없던 그는 늦은나에게 시작하는 견습공이지만 나름 삶의 의미를 되찾아 가는듯 보였지만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댓가로서 그를 '신학교 대장장이라고 놀린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공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헤어진 후 취한 채 강가를 걷다가 물에 빠져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모를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다음날 시체가 발견되어 장례가 치뤄지고 장례식장에서 구둣방 주인 플라이크는 신학교 교장선생과 학교 교사들을 가르켜 한스를 죽인 공범이라고 비난한다.
제목은 수레바퀴 아래서 이겠지만 실상 그리 많이 언급이 되진 않는다. 신학교 교장이 한스에게 "너무 지치면 수레바퀴 아래에 깔려 죽는다"는 표현을 썼다. 이는 즉슨 경쟁에서 낙오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은 죽는다라고 쓴 것을 보면 한스의 운명을 예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나에게 해주는 말은 상당히 와 닿았다.
첫번째로 한스는 애초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주위의 시선에 맞춰 노력했다. 그러고서 돌아온 것이 무엇인가. 결국 이 생활은 나에게 맞지 않다는 후회와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는 과거에 대한 미련이 아닌가. 한스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저 착한아이로서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던 것 뿐이였다. 막다른 골목에 마주쳐 다시 견습공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모습이 어찌그리 나와 같은지,..... 나도 하라는거 하고 하지 말라는 것 안하지 않았나 친구를 경쟁상대로 생각하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대학교 3~4학년때와 한스의 신학교때의 방황이 나와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 있다.
둘째로 한스의 죽음에 동조한 주위 사람들이다. 구둣방 주인 플라이크는 마지막에 프록코트를 입은 학교교사들과 교장선생을 공범으로 몰았다. 나는 범인이 한명 더 있다고 생각한다. 가슴 아프겠지만 상황이 이렇게 까지 된것은 아버지의 욕심이 크다. 우리는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해서 아이들을 공부에 혹사시키는 노예로 만들고 있지 않나 언제 한번 자신의 아이가 이것을 하고 싶다고 하였을때 응원해준적이 있었던가.. 사색할 시간이라도 줬던가 그저 아이들은 "뛰어난 경주마처럼 방향성도 모르고 그냥 트랙을 가장 빠르게 돌 뿐"이지 않는가 공부를 잘해 좋은 서울대를 가고 삼성이나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 시대의 표준아닌가. 어떤 글에서 보았는데 한국에서 가장 개개인이 고쳐야 될 것은 성공의 획일화라고 말한것을 보았다. 돈을 많이 버는것이 인생에 있어서 성공일까.. 슈바이처는 이런말을 했다.
성공은 행복의 열쇠가 아니다 그러나 행복은 성공의 열쇠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미친 사회인지 느껴보니 몸소 알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쓸어 모으고 가진 자본으로 자신의 부를 세습, 축적하고, 합법적이 아니라도 괜찮으니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신이 가진 이기심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로 되어 있다. 적어도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서 우리는 아이들을 사지로 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를 위해서 내 아이가 희생되어야만 하는가.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사육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여담,, 헤르만 헤세 그리고 한스 기벤라트의 두번째 생활 (기계공, 시계공)은 나와 비슷한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나 역시 사범대를 나와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 진실이라고 믿고 자신의 목소리와 싸우게 되고... 지치고,, 방도가 없어서 내가 한번도 생각도 해보지 못한길에 도전을 하는것.. 지금의 나의 모습이다. 기벤라트처럼 죽을지, 헤세처럼 다른 일로 승화를 시킬지 그것은 신에게 달려있겠지... 삶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행복을 찾고 싶다. 내가 언제 큰 행복 바라는거 보았던가... 좋아하는 직업과 좋아하는 취미 좋아하는 가족들이 내게 전부이다.... 아ㅋ 좀 큰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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