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의 나라를 읽고 독서

갑과 을의 나라

지은이 : 강준만


최근 유행하는 <갑과 을의 나라>라는 책을 샀다.

최근들어 부쩍 갑을 관계라는 말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남양유업이라든지 대기업 하청업체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여러 부조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자식나이만한 인간이 "갑"이라는 탈을 쓰고 사람(을)을 이렇게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여태껏 보아온 세상은 "그래도 적어도" 상도덕과 인간애는 있다고 느꼈었는데 최근에 또 터진 포스코 임원 대한한공 승무원 폭행설을 듣고 대체 나이도 처먹고 그만한 직위에 있는 사람이 왜 동네 양아치짓을 할까? 학교 다닐때 그런놈들에게 맞고 다녔나 싶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갑"이라는 탈을 쓰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루는 인간상과 당하는 "을"의 입장이 어디에서 부터 시작됬는지 찾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 생각하기로 높은 고도성장기 때에 미쳐 따라오지 못한 "문화지체현상"이라고 말하지만 이 작가는 그 뿌리를 조선시대에서 부터 찾았다.


1장은 한국인이 언제부터 갑을관계에 중독되었나의 뿌리를 찾는 장이고 2장은 갑을 관계로부터 파생된 브로커의 역사를 되짚는다 3장은 선물(present)의 유래와 장단점을 "갑을관계"에 비추어 말하며 마지막 4장은 을의 반란과 시위의 역사에 대해서 되짚는다.


1장에서는 사례를 들면서 조선시대에 양반계층에서 부터 이러한 관계가 생겼다고 말한다. 이름하여 "관존민비"사상이다. 조선 초기 시작된 계급사회는 양반들이 잠식해온 사회였다. 숙종때 양반의 비율은 10%를 넘지 않지만 정조때 되면 35%를 부쩍넘어서는 추세이다. 이는 다시 말해 "매관매직"이 현행한다라고 결론 지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갑의 횡포에 견디다 못해 을이 갑이 된 상황 "을"에게 "갑"의 위치란 억압하고 착취하면서도 내가 꼭 되고 싶은 워너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조선은 한창 전에 무너졌어야 하지만 그것이 유지되고 떠받든것은 을의 입장인 민초들이었다. 춘향전에도 이러한 현상을 꼬집고 있지 않나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일만 백성의피요, 옥소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촉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았더라"



또한 조정에서는 납세자인 양민들이 없어지니 노비들을 양민의 지위로 올려 세를 걷어야 했을 것이며 얼마 안되는 공직을 팔아서 세를 마련해야 할 것이였다. 그리고 근대로 들어서서 "금전"을 많이 가지고 있는 졸부들은 더욱더 활개를 쳐 민심을 어지렵혔을 것이다. 어제는 개똥아 불렀던 개똥이가 오늘은 김생원이 되 있으니 얼마나 황당한가. 여기에서 작가는 한마디를 한다. "억울하면 성공해라"라는 말이 시작된 기원이다.


또한 더욱 심해진 것은 일제강점기때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쓸어모은 관리들은 일본에 충성을 맹새하는 대신에 자신의 부를 보장 받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갑""을"관계는 심화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현대까지 갑을관계를 짚어보는데 소시오패스들이 난무를 하고 과거 잘못을 저질렀던 사람이 아직 처벌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공직자들은 거의 바뀌지가 않고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 한국의 엘리트들은 "윤리성의부재" 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전관예우나 국감향응 성접대 등도 같은 맥락으로서 풀이가 가능하다.


안타까운것은 이러한 을에서 갑이 되려고 하는 노력은 한계가 분명이 보인다. 말그대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라는 이단아가 아니라 대체적으로 기본 프레임 속에서 바둥바둥 살아 간다는 이야기 이다.


또한 작가는 이런말을 한다. 사람에겐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매관매직이나 부정부패로 이어지기 쉬운데 이 말은 즉슨 인정을 받는 기준이 오로지 "돈" 이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한다. 살아가는데 필요하겠지만 필요이상으로 돈을 숭배하는 배금주의 사상은 우리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까지 돈 잘버는 사짜 돌림(의사 판사 변호사 교사 마법사?)직업을 선택하라는 강요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시 또 돌아보면 국가는 과연 을들에게 어떠한 보장을 하고 있은 것일까..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갑이 되고 싶어 안달인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장은 갑에 대항하는 을의 이야기들이다. 여기서는 내가 익히들어 잘 알고 있는 6.29선언이라든지 노조라든지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는 한국인에게 "심정"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내린다. 그것은 "이성" 이 아니라 "감성"이라는 단어가 올바르다고 말한다.

반란을 일으키는 스파크는 항상 감성에 있었다. 이한열열사라든지 전태일열사 그리고 2002년에 효순이 미선이.. 4.19혁명 이후 자신의 딸이 4.19 혁명 데모 대열에서 빠진게 부끄럽다는 한 아버지는 1960년 5월 2일자 조선일보에 "너는 그날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라는 사설을 썻다. 내용인즉 딸이 시위대에 참여하지 않고 역사의 흐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부끄러운 아버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명문 대학교를 나온다 하더라도 시야는 어찌 그리 좁고 행동은 왜 하지 않는것이냐라고 꾸짓곤 나는 부잣집 맏며느리를 만들기 위해서 너를 대학에 보내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또한 중2짜리 여중생은 4.19혁명 당시 유서를 쓰고 행렬에 나가 총탄에 맞아 죽었다. 이 유서가 발견되고 소녀의 죽음은 숭고한 것이되어 더욱더 시위를 가속화 시켰다는 것이다. 책에는 이런말이 있다. "불의의 폭력은 두려움을 낳지만 공포는 한순간 분노로 바뀔 수 있다."


또한 시위의 변화 까지도 알려주고 있는데 다카기마사오 시절땐 학생들은 화염병을 던진 반면 군사독재가 지나고 나서 비폭력 시위로 변했다. 왜냐하면 예전엔 정권이 시위보다 더욱 폭력적이여서 용인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시위는 마지막으로 촛불시위로 발전된다.


2002년 미군 장갑차가 민간인 그것도 어린 학생두명을 장갑차로 깔아 뭉개버렸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네티즌은 이러한 호소문을 올리고 촛불시위를 기획한다.


죽은 이의 영혼은 반딧불이가 된다고 합니다.

 촛불을 준비해주십시오. 저 혼자라도 시작하겠습니다

 광화문에서 미선이, 효순이와 함께 수천수만 반딧불이가 됩시다.

 집에서 나오면서부터 촛불을 켜주십시오. 

누가 묻거든, 억울하게 죽은 누이를 위로하러 간다고 말씀하십시오.

 경찰이 막을까요? 차라리 맞겠습니다


이 글은 삽시간에 퍼졌고 촛불시위가 시작되었다.


최근의 시위는 하지만 희생만 클뿐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내긴 힘들어보인다. 시민교육론에서도 본 내용이지만 평화시위를 하면 언론에서 취재를 하지도 않고 정부는 들어줄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것이 현실이다.


아니면 그런 시위를 하더라도 최근 나온 쌍용차 사건처럼 언론이 다 장악된 상태에선 전체적 공감을 이끌어 내기가 힘들다. 별써 싸용차에는 몇명이 자살을 했나,, 다 우리네 아버지 형 같은 사람들인데..


작가는 이런 맺음말을 함으로서 책을 끝을낸다. 갑을이라는 명칭이 없어진다 해서 이런 비 정상적인 착취관계가 해결 되지는 않으며 신 자유주의는 착취관계를 불러 온것이 아니라 갑을 슈퍼갑으로 만들어버린 장본인이다. 그렇다면 착취 관계가 아니면 발전을 하지 못하는걸까?


작가는 맥도날드를 예를든다. 소위 프렌차이저와 프렌차이지관계를 돈독히 한것이다. 각자의 나라에 맞는 메뉴를 개발하고 문화를 이해해서 완벽하게 부리 박기 위해선 프렌차이저 자신이 나서는 것이 아닌 프렌차이지를 내세우는것이 올바르다 판단했기 때문에 그러한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은 대박을 쳤다. 맥도날드의 혁신과 성공은 프렌차이지에서 나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착취관계아 아니라 동업자 관계가 되면 공멸이 아니라 공생이 가능하다는 경영마인드이다


또한 남양의 밀어내기는 법안이 없어서가 아니라 전관예우와 승자독식을 전제로 한 마인드에 있다고 본다. 승자독식을 전제로 한 선거와 그것을 기반으로 갑이되기 위한 투쟁을하고, 갑을 없애겠다라고 선거에서 날 뽑아달라는 말은 더이상 논리도 맞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갑을 관계를 강화 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자세히 보면 "억울하면 출세하라"라는 개개인이 감당해야하는 이데올로기가 횡횡하고 국가가 개인을 보호해 주지 않으니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또한 갑을 관계가 파생이 되고 그게 싫어 내 자식만큼은....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 싸이클을 자세히 보면 갑을 관계는 웃기게도 을에 의해서 지속이 되는것이다.


위에서 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연역적 개혁은 절대 다수가 동의 할 수 있는 개혁마저 이념투쟁으로 전락하는 현상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시대정신이 만들어 질 수 없고 다수의 국민들이 동의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며 민초에서 시작되어 위로 올라가는 귀납적개혁인 [시대정신]을 기초로 해 개혁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억울하면 출세해야되는게 아니라 억울하면 연대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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